원래 오늘은 버스킹 예배를 드리기로 했던 날인데, 우천시 취소가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일기예보에는 비가 온다고 했는데, 또 실제로는 안 와버림..)
어쨌든 그렇게 버스킹 예배는 센터예배로 대체되었다.
강제로 5층까지 계단 운동행이었다.
바로 최주혜 멤버의 남편되시는 전하랑 형제님 되시겠다.
피스트 티셔츠도 전달하고 케이크도 먹었다.
오랜만에 복작복작한 피스트워십 모임 현장이었다.
FEAST WORSHIP · CENTER SERVICE
영혼을
영접하는 사람
누가 더 큰가를 묻는 시선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맡기신 영혼을 바라보고 낮은 마음으로 환대하는 삶으로.
누가복음 9장 46–48절
46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47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8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일은 하나님이 하시고, 우리는 겸손히 따라갈 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역의 중심은 ‘내가 얼마나 드러나는가’가 아니라, ‘한 영혼이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가’에 있습니다.
수고와 인정, 성공과 실패를 계산하며 ‘누가 더 큰가’를 묻게 됩니다.
제자들의 시선을 자기 안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작은 영혼에게로 돌리십니다.
상대의 자리까지 낮아져 환영하고 축복하며 섬기는 것이 참된 큼입니다.
놀라운 구원 직후에 벌어진
어색한 논쟁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뒤, 귀신에게 사로잡혀 고통받던 한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아이를 고치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온전히 회복시키셨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보여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고통 가운데 몸부림치는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구원하시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뒤에 제자들은 “우리 중 누가 더 큰가”를 두고 논쟁합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고통받는 영혼을 향해 있었지만, 제자들의 시선은 어느새 자기 자신과 서로의 성취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사역의 중심에
내가 서고 싶을 때
제자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도 열심히 준비하고, 시간을 내고, 밤을 새우며 섬깁니다. 그런데 아무도 우리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으면 마음이 서운해집니다.
“내가 이렇게 애썼는데 왜 아무도 몰라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오는 순간, 사역의 대상이었던 영혼은 시야에서 멀어지고 내가 중심에 서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보다 내 수고와 감정, 평가와 인정이 더 크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누가 더 잘했는지, 누가 인정받는지, 내 노력이 얼마나 드러났는지를 따집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다시 일어서는 일에 기뻐하며 내 자리를 내어드립니다.
하나님이 부족한 우리를 사역의 자리에 세우시는 이유는 우리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덮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드러내시기 위해서입니다. 사역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며,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대상은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혼입니다.
영혼을 영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
내가 아니라 영혼을 바라보는 마음
예수님은 제자들의 논쟁을 단지 말로만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셨습니다. “누가 큰가”를 따지던 제자들에게 지금 바라보아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직접 보여 주신 것입니다.
시선이 자기 안에 머물면 변론과 비교가 생깁니다. 그러나 시선이 하나님이 맡기신 영혼에게로 옮겨지면 싸움은 멈추고 사역의 목적이 다시 선명해집니다.
낮은 마음으로 환대하는 태도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영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접은 단지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환영하고 축복하며 기꺼이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대의 기준은 나에게 있지 않습니다. 환영의 주체는 나일 수 있지만, 환대받는다고 느끼는 기준은 상대에게 있습니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자리와 필요를 살피며 기꺼이 낮아지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나이가 어린 사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여린 사람, 관계에 서툰 사람, 믿음이 어린 사람, 상처와 아픔을 지닌 사람도 포함합니다. 그들을 영접하려면 “내 기준이 맞으니 따라오라”고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낮아지는 일을 기뻐해야 합니다.
사역과 일상에서
이 말씀을 살아내기
서운함이 올라올 때 그것을 감추기보다, 내 시선이 어느새 영혼보다 나를 향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내가 잘했는가?”보다 “이 사람은 하나님께 더 가까워졌는가?”를 먼저 묻습니다.
내가 주고 싶은 방식이 아니라, 상대가 실제로 환영받고 사랑받는다고 느낄 방식을 살핍니다.
눈에 띄는 사람보다 소외되고 서툴며 믿음이 어린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함께 걸어갑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가?
- 최근 누군가가 내 수고를 알아주지 않아 서운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 그 순간 내 시야에서 놓치고 있었던 ‘맡겨진 영혼’은 누구였습니까?
- 나는 상대를 환대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 기준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지금 내가 사랑으로 그 사람의 자리까지 낮아져야 할 한 가지 행동은 무엇입니까?
- 이번 사역과 앞으로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드러나시도록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 우리의 시선을
영혼에게로 돌려 주소서
하나님, 사역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게 하소서. 우리의 수고와 능력을 드러내려 하기보다, 부족한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게 하소서.
비교와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혀 맡겨 주신 영혼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시선을 나에게서 고통받고 외롭고 믿음이 어린 사람들에게로 돌려 주소서.
우리의 기준을 앞세우지 않게 하시며, 기꺼이 상대의 자리까지 낮아져 환영하고 축복하며 섬기게 하소서. 우리가 작은 자를 영접함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우리의 모든 삶의 자리에서 영혼을 살리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